빠르기말과 BPM
악보에는 왜 숫자 대신 단어가 적혀 있을까
클래식 악보를 펴면 첫 마디 위에 Andante나 Allegro moderato 같은 단어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트로놈 숫자가 함께 적혀 있으면 다행이지만, 오래된 곡일수록 단어만 있고 숫자는 없습니다. 그러면 연습하는 사람은 메트로놈을 몇에 맞춰야 할지부터 막힙니다.
이 단어들을 빠르기말이라고 부릅니다. 대부분 이탈리아어이고, 원래 뜻은 속도보다 분위기에 가깝습니다. 알레그로는 즐겁게, 안단테는 걷듯이, 아다지오는 편안하게라는 뜻입니다. 작곡가는 숫자를 지정한 것이 아니라 곡의 성격을 알려 준 것이고, 그 성격에서 속도가 따라 나온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빠르기말에는 정답 BPM이 없습니다. 다만 연주 관행이 쌓이면서 각 단어가 대체로 어느 범위를 가리키는지에 대한 공감대는 생겼습니다. 이 글은 그 범위를 출발점 삼아, 단어를 실제 연습 숫자로 옮기는 방법을 다룹니다.
주요 빠르기말과 대략적인 BPM
아래 표는 느린 것부터 빠른 것 순서로 주요 빠르기말을 정리한 것입니다. BPM 범위는 비트딕의 템포별 페이지가 쓰는 구간 기준입니다. 교재나 기계식 메트로놈 눈금마다 경계가 조금씩 다르므로, 경계 근처의 숫자는 어느 쪽에 속한다고 단정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표를 볼 때 기억할 점은 범위가 꽤 넓다는 것입니다. 알레그로만 해도 가장 느린 쪽과 가장 빠른 쪽의 차이가 25 BPM이 넘습니다. 같은 알레그로라도 16분음표가 쏟아지는 곡과 4분음표 위주의 곡은 전혀 다른 숫자에서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 빠르기말 | 원래 뜻 | 대략적인 BPM |
|---|---|---|
| Largo (라르고) | 넓게, 폭넓게 | 40~59 |
| Adagio (아다지오) | 편안하게, 느리게 | 60~71 |
| Andante (안단테) | 걷는 빠르기로 | 72~95 |
| Moderato (모데라토) | 보통 빠르기로 | 96~111 |
| Allegro (알레그로) | 즐겁게, 경쾌하게 | 112~139 |
| Vivace (비바체) | 생기 있게 | 140~159 |
| Presto (프레스토) | 매우 빠르게 | 160~199 |
| Prestissimo (프레스티시모) | 가능한 한 빠르게 | 200 이상 |
앞뒤에 붙는 말이 속도를 바꾼다
빠르기말은 혼자 쓰이기보다 수식어와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식어를 놓치면 숫자가 한 구간씩 틀어집니다.
정도를 조절하는 말
molto와 assai는 매우라는 뜻으로 원래 말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Allegro molto는 알레그로 중에서도 빠른 쪽, Adagio molto는 아다지오 중에서도 느린 쪽입니다. 반대로 non troppo나 ma non troppo는 지나치지 않게라는 뜻이라 원래 말을 조금 누그러뜨립니다. Allegro ma non troppo라면 알레그로 범위의 아래쪽에서 출발하면 됩니다.
poco는 조금, più는 더, meno는 덜이라는 뜻입니다. 곡 중간에 più mosso가 나오면 앞보다 조금 더 움직이라는, 즉 약간 빨라지라는 지시이고, meno mosso는 그 반대입니다.
작게 만드는 어미
-etto와 -ino는 이탈리아어에서 작다는 뜻을 더하는 어미입니다. Allegretto는 작은 알레그로라서 알레그로보다 조금 느리고, Larghetto는 작은 라르고라서 라르고보다 조금 빠릅니다. 원래 말에서 한 걸음 보통 빠르기 쪽으로 다가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외적으로 헷갈리는 것이 Andantino입니다. 작은 안단테이니 안단테보다 빠르다는 해석과 느리다는 해석이 역사적으로 모두 존재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안단테보다 약간 빠르게 보는 경우가 많지만, 곡의 성격과 음표 밀도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악보의 M.M. 표기 읽기
악보에 M.M. ♩= 120 같은 표기가 있다면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M.M.은 멜첼의 메트로놈(Mälzel's Metronome)의 약자이고, 4분음표를 1분에 120번 치라는 뜻입니다. 요한 멜첼은 1815년 무렵 진자식 메트로놈을 특허로 등록해 상품화했고, 베토벤이 1817년 자신의 교향곡들에 메트로놈 숫자를 붙여 발표하면서 숫자로 템포를 적는 관행이 퍼졌습니다.
주의할 것은 기준 음표입니다. 2분음표에 숫자가 붙어 있으면 4분음표 기준으로는 두 배입니다. 2분음표 = 60은 메트로놈에서 120 BPM입니다. 6/8이나 12/8에서 점4분음표 = 60처럼 적혀 있다면 8분음표가 1분에 180번이므로, 비트딕에서는 박자표를 6/8로 고르고 180 BPM으로 맞추면 같은 결과가 납니다.
숫자가 적혀 있어도 그것이 유일한 정답은 아닙니다. 작곡가의 메트로놈 표기가 현실적으로 너무 빠르다는 논쟁은 베토벤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습 단계에서는 표기 숫자를 최종 목표로 두고, 그보다 낮은 숫자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템포가 바뀌는 지시어
곡 중간에 템포를 바꾸라는 지시도 자주 나옵니다. ritardando(rit.)와 rallentando(rall.)는 점점 느리게, accelerando(accel.)는 점점 빠르게입니다. a tempo는 원래 빠르기로 돌아가라는 뜻이고, Tempo I(Tempo primo)은 곡 처음의 빠르기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rubato는 박 안에서 시간을 밀고 당기는 표현을 허락한다는 뜻입니다.
메트로놈은 일정한 박을 내는 도구라서 이런 지시를 그대로 따라 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이 구간에서 메트로놈이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템포 변화를 연습할 때 가장 자주 무너지는 곳은 변화가 끝나고 원래 템포로 돌아오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 리타르단도 구간은 메트로놈을 끄고 연주하되, a tempo가 나오는 마디부터 다시 클릭을 켜서 원래 템포로 정확히 돌아왔는지 확인합니다.
- 아첼레란도는 시작 템포와 도착 템포를 각각 정해 두고, 두 숫자에서 모두 해당 구간을 깨끗하게 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합니다.
- 변화가 몇 마디에 걸쳐 일어나는지 세어 두고, 마디마다 대략 몇 BPM씩 바뀌는지 숫자로 적어 보면 변화의 속도가 일정해집니다.
- più mosso나 meno mosso처럼 단계적으로 바뀌는 곳은 앞뒤 구간의 BPM을 따로 정해 두고, 경계 두 마디를 반복 연습합니다.
빠르기말을 연습 숫자로 옮기는 순서
먼저 표에서 해당 빠르기말의 범위를 찾고, 수식어를 반영해 범위의 위쪽인지 아래쪽인지 정합니다. 다음으로 곡에서 가장 빠른 음표를 찾습니다. 16분음표가 많다면 범위 아래쪽, 4분음표와 8분음표가 대부분이라면 위쪽이 자연스럽습니다. 박자표가 2/2(알라 브레베)라면 큰 박이 2분음표이므로 메트로놈 숫자는 두 배가 된다는 점도 함께 확인합니다.
그다음에는 녹음을 들어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좋아하는 연주 녹음을 틀어 놓고 Tap BPM으로 박에 맞춰 몇 번 두드리면 그 연주자가 고른 숫자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두세 개의 녹음을 재 보면 같은 안단테가 연주자마다 얼마나 다른지도 보이고, 그 사이 어디에 내 템포를 둘지 판단하기 쉬워집니다.
최종 숫자가 정해졌다면 연습은 그보다 낮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비트딕 메트로놈은 마지막으로 쓴 BPM과 박자표를 기억하므로, 오늘 도달한 숫자를 내일 그대로 이어 갈 수 있습니다. 빠르기말은 목적지의 분위기를 알려 주고, 메트로놈 숫자는 그곳까지 가는 길을 측정해 주는 셈입니다.